프로젝트의 마지막 퍼즐 조각

Javascript를 모르지만, React Navtive로 앱 만들기. 비동기 처리도 모르지만, Django로 백엔드 만들기. For 문만 알지만, Python 물류 자동화 시스템 구축하기. 대학교 입학 첫해에 앱 prototype 만들기. 공학을 모르는데 공학 설계를 활용한 BM을 만들어보는 수업에서 만점 받기. 토익 485점의 영포자에서 935점 일궈내기. 중도에 그만두는 인원이 반이 넘는 응원단에서 몸치로 시작하여 2년의 활동 마무리하기.

현실적인 제약조건을 포기할 수 없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는 제가 노력하고 싶은 회사,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회사를 언제나 찾고, 그곳의 일원이 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귀사의 구원투수이자 선발투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도전의 성취감, 발전하고 있다는 자신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의 도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유대감과 만족감은 저를 모험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성취감은 저를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물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 순간의 저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발전하고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업무 이후에도 공부하고 포기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는 저의 모습은 자신에게 더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심어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더 넓은 곳에서 더 넓은 사회에서 저의 능력을 활용하고 싶습니다.

나의 목표에 집중하는 사람은 많지만, 누군가의 꿈, 생각, 목표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서포트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저는 설령 누군가의 말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해도 무시하지 않아 왔습니다. 1년 전, 웹 기반의 사업을 앱으로 확장해 보자는 회사 대표님의 말씀도, 발표날이 채 이틀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경쟁 PT를 준비하여 교내 유럽 탐방 체험 프로그램 신청을 함께 도와달라는 학교 동기의 말도, 영상 촬영과 편집 툴을 하나도 모르지만 일단 부딪혀보라는 학교 선배의 말도 모두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리스너의 자세로 나만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들 외에도 남들의 꿈을 서포트해주는 서포터의 역할로도 많은 사람을 돕고 서포트 해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중에도 현재 제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 대표님의 오랜 꿈이었던 앱 제작을 실현했던 기억이 제일 자랑스럽습니다. Python만 알던 신입 개발자였던 제가 앱의 기획부터 실제 프로그래밍까지 모두 제 손을 거친 앱을 만들어 볼 수 있었던 개인적 목표 성취의 과정임과 동시에, 다른 이의 꿈을 실체화했던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제 목표를 이루고 있다는 자기효능감과 그리고 남을 돕고 있다는 선한 성취감이 좋은 시너지를 내어 모르는 부분이 있어도 끝끝내 해결책을 찾고 탐구하여 결국 앱 기획 두 달만에 백엔드 서버와 앱 출시를 동시에 구축해낼 수 있었고, 출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3,000명의 유저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이 앱을 가지고 대표님은 그다음 달, 꿈에 그리셨던 목표인 토스 스타트업 서바이벌 FOUND에 참가하셨고 세미파이널에 진출 할 수 있었습니다.

앱을 만들면서 어려운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어려움 중에도 특히 UI 제작 이후 과정인 서버 제작에 특히나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책과 인터넷 강의를 섭렵한 뒤에도 계속해서 개발자 커뮤니티에 질문하고 답을 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개발이라는 직군 자체, 그리고 개발자라는 직업 자체가 계속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탐구하고,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는 분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학 생활을 통해 터무니 없다고 생각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부딪히는 힘을 배웠지만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힘은 적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에 비해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제는 어느덧 스스로 문제 해결을 위해 탐구하고, 사유하는 개발자로 성장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저는 이제 구원투수에서 완투를 위한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고자 합니다. 경기 내내 어려운 상대를 마주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선발투수처럼 어려운 문제에 거침없이 도전하고, 위기를 이겨내어 프로젝트의 처음과 끝을 함께하는 그런 선봉장이자 페이스메이커 개발자가 되겠습니다.

풍랑을 견뎌낸 항해사

인생에 정도가 있지 않지만 많은 루트 중 저는 비교적 어려운 루트로 성장해왔습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4번의 전학을 경험할 정도로 안정되지 못한 가정 형편, 공과금조차 내지 못하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학년이 오를수록 어릴 적 친구들과 교우관계를 유지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결국 제 곁을 지켜주던 친구들은 떠났고 덩달아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환경도, 학교도 편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린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묵묵히 그 당시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며 이 상황을 견뎌내는 방법을 체득했습니다. 1년이 가깝게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책을 읽고 공부한 결과 성적은 올랐고 자연스럽게 공부와 책에 뜻이 있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때에는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면 커버할 수 있었던 학습량이 중등을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서 학원에 다녔던 친구들과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순수 공부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저는 고등학교 1학년부터 3년 내내 매일 밤 9시까지 야간 자율 학습을 빼먹지 않고 공부했으며 EBS 인터넷 강의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등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 결과 상위 30%에서 시작했던 내신 성적은 상위 7% 내로 마무리할 수 있었고 서울 소재의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가정형편의 차이는 의무교육일 때보다 대학교 생활할 때 더욱 체감되었습니다. 교통비, 식비를 포함하여 고등학생일 때보다 생활비가 더 많이 들어갔고 그 외에 학과 활동하는데도 비용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지출이 당연히 많아질 수밖에 없었고 저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대학교 2학년 때부터 한 학기도 쉬지 않고 학업과 일을 병행했습니다. 때때로 제가 부모님께 금전적으로 도움을 드리기도 하면서 가족과 함께 성장해나가고 이겨내 나간다는 뿌듯함으로 환경에 억눌리지 않으려 많이 노력했습니다.

군대를 제외하고 약 4~5년 가까이 쉬지 않고 일하다보니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었고 학업과 여러 활동을 병행하다 보니 최대한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방법을 자연스럽게 고안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를 활용하는 일에서는 노동집약적인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윈도우 Batch 명령어와 업무 툴을 최대한 활용해서 자동화를 이뤄내고, 신문사에서 일할 때는 기사들을 크롤링하고 자료를 모으는 일을 자동으로 처리하고 많은 업무 툴을 익히는 등 자신 없는 일을 자신 있는 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가끔 주변에서 제게 왜 이렇게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지 물어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항상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환경에 압도당하지 않고 환경을 스스로 가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앞선 자소서에서도 꾸준히 도전하고 성취한 경험을 공유해 드린 것은 이런 제 성장 배경을 토대로 환경을 주도해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주어진 환경에 좌절하고 순응하기보다, 제 삶의 키를 제가 잡고 스스로 주도해나갈 수 있는 삶을 살아왔고 꾸준히 제 삶을 기획해 나가고 싶습니다.

내가 꿈꾸는 나의 미래

저는 대부분의 일을 혼자서 진행해왔습니다. 프로젝트의 시작에서 마무리까지 의사결정을 하다 보니 의심은 언제나 제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지금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내가 현재 좋은 발전을 하는 것인 지, 내가 맞는 결정을 내린 것인 지 등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의심이 나날이 커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상호 검증 및 조언을 얻을 수 있는 동료의 부재를 여실히 느꼈고, 제 성과 및 방향을 검토하고 평가해줄 수 있는 상사와 체계의 부재를 크게 경험했습니다.